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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황) 아카시 세이쥬로의 비밀 샘플

leftoverpeach 2015. 8. 21. 21:39



 금색 털이었다. 손끝에 집은 그것을 문질러본다. 부드럽다. 머리카락? 내 머리카락이라기엔 조금 길었다. 그리고 아카싯치의 옷에 붙어 있을 리도 없고. 나는 아카싯치의 셔츠를 벗겨주는, 혹은 입혀주는 금발의 누군가를 떠올렸다.

 

*


 여행을 가자.
 그렇게 말한 것이 아카싯치였다.
 좋슴다.
 그렇게 대답한 것은 나였다.
 대체로 아카싯치가 대책 없이 굴 때는 뭔가 사정이 있는 법이다. 어차피 나에게는 말하지 않겠지만, 이제 와서 그런 사실이 중요하지도 않았다.
 계획은 키세가 짜 줘.
 제가요?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말 할게.
 .
 그런 느낌이었다. 뭐랄까, 대책 없다기보다는 엉망진창이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유지시키는 데에만 노력해서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카싯치는 지친 거다. 아니, 그렇다고는 해도 갑자기 전화해서 다짜고짜 하는 얘기가 저 모양인 건 대체 날 뭘로 생각하는 걸까. 거기서 나는 생각을 멈추었다. 그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잖아, 하고 어딘가에서 경종이 울렸기 때문이다. 알겠슴다, 하지만 기각은 없기예요, 하고 말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그것이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중략)


 고양이의 꿈을 꾸었다.
 중학생 때였다. 아카싯치와 친해지게 된 계기이며 멀어지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내가 공원에서 그 스코티시폴드를 만난 것은 아카싯치보다 3개월 정도 빨랐다. 금색 털의 스코티시폴드였다. 고양이를 연상할 때 흔히 떠오르는 뾰족한 귀와 긴 꼬리가 없는 탓인지, 겉보기는 그리 고양이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내 곁에는 새로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 고양이는 여자 친구가 가벼운 마음으로 우유를 주기 시작했더니 거기에 살기 시작했다는 모양이었다. 그런 경솔한 점이 왠지 마음에 들었다. 그런 가벼운 정도의 마음을 호의라고 단정 짓는 것이 귀여웠다. 정확히 말해, 마음에 든 것은 여자 친구의 그런 면모였고, 고양이 같은 건 어찌되든 상관없었으나, 어째선지 헤어지고 나서 그 고양이를 찾아 공원에 오는 것은 여자 친구 쪽이 아니라 나였다.
 
고양이같이 생기지도 않은 것이 울음소리만은 고양이흉내를 냈다. 손을 뻗으면 머리를 비벼댔다. 멍청하긴. 넌 버려진 검다. 조금 생긴 게 신기하니까, 흥미본위로 다가왔던 것뿐이라구요. 자주 있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기다리는 건 그만두란 말야, 바보 같으니까……. 그제 서야 나는 헤어짐이 버려짐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를 찾아가는 것도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사놓은 파우치가 아까워 미련스럽게 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고양이는 대답이라도 하듯이 먀앙하고 울었다.
 
……고양이는 야옹하고 우는 것이 아니었나.”
 
조금 신기해하는 그 목소리에, 나는 숨어있던 것도 잊고 웃음 터트렸다. 그가 등을 돌려 나를 보았다. 붉은 두 눈동자가 당황스러움에 확장되어 나를 비추었다.
 
, 미안, 캡틴 하던 거 계속하세요.”
 
기다려, 키세.”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가 기다리라고 말하면 이유 없이 기다려버린다.

  

*


 그리고 나는 그 날부터 아카싯치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