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츠카) 대도시교향곡 샘플
실로 반년만의 귀국이었다.
츠카사는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출구로 향했다. 약 12시간의 비행에 지친 몸이 이곳저곳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고향에 돌아왔다. 주변에 보이는 언어가 온통 일본어라는 것만으로도 일본에 온 사실이 실감났다. 한참을 기다려 수화물을 컨베이어 벨트에서 끌어내고, 이 무거운 걸 들고 어떻게 돌아갈까 생각하며 공항의 택시 승강장에 섰다.
‘결국 연락을 주지 않으셨네요.’
츠카사는 조금 낙담하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비행하는 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메일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지만, 츠카사가 기다리는 그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모처럼 출발 전에 연락을 했으니, 지금쯤 답이 와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희망적 관측이었던 모양이다. 혹시 몰라 집에는 차를 보낼 필요 없다고 연락해두었다. 그걸 이제와서 부른다한들 오가는 시간이 낭비될 뿐이다. 역시 택시밖에 없군요,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 때 누군가의 손이 뻗어와 트렁크를 낚아챘다.
“저기요? 그건 제 Trunk입니다만.”
츠카사는 놀라서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이게 무슨 일인가 그 소매치기는 혀를 쯧 찼다. 모자에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대동해 얼굴을 거의 가렸다. 어느 모로 봐도 소매치기의 행색이다. 츠카사는 이 소매치기가 트렁크를 들고 뛰지나 않을까 경계했다. 그러나 이 소매치기는 당당하게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가자고. 차 가져왔으니까아.”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뜻밖에도 츠카사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츠카사는 눈을 깜빡였다.
“혹시나 당신은 세나 선배?”
“혹시가 아니어도 세나 이즈미인데.”
선글라스는 벗지 않은 채 코까지 덮었던 마스크를 끌어내려 얼굴을 반쯤 보여준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얼굴은 세나 이즈미 본인의 것이 아닐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형식미를 지녔다. 반 년 동안 만나지는 못했지만, 츠카사가 그 얼굴을 잊어버릴 턱이 없다. 츠카사는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두 배 빨라졌다. 순간적으로, 어째서, 하고 물으려다 질문을 바꾸었다.
“……밤에 Sunglass를 끼는 의미가 있습니까? 절 맞으러 오신 거라면 연락이라도 주셨으면…….”
“아아, 쫑알쫑알 시끄러워 죽겠네. 영국에 있는 동안 발음 더 알아듣기 어려워 진 거 아냐?”
“우웃.”
츠카사가 잠시 움츠러든 사이에 추격타가 날아왔다.
“식사 예약해놨으니까 8시까지 가야한다고오.”
그러나 여기서 그냥 따라가면 스오우 츠카사가 아니다.
“세나 선배는 여전히 막무가내시군요.”
부루퉁하게 따라오는 츠카사는 흘긋 보며 이즈미도 덧붙였다.
“카사군도 여전히 빌어먹을 애송이지만.”
*
츠카사는 유메노사키 졸업과 함께 영국의 대학으로 진학했다. 정확히는, 유메노사키의 영국의 자매대학으로 진학했다. 그곳에서 츠카사는 일종의 터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결단을 내리기까지 츠카사는 많은 이에게 조언을 구했고, 여러 번 에이치나 레오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스오우 집안의 많은 어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졸업하면 금방이라도 5인 체제의 Knights 활동을 시작할 줄 알았던 다른 선배들은 각자 생각하는 바는 있었으나, 지금은 츠카사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 중 츠카사와 가장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 받는 것은 이즈미였다. 그와는 졸업 전부터 키스를 하거나, 몸을 섞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다른 이유도 계기도 없었다. 이즈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도 츠카사는 잘 모른다. 츠카사로써는 행위 자체도 기분이 좋고, 이즈미가 조금 상냥하게 구는 것도 기분이 좋고, 거기에 이즈미의 얼굴도 좋아하기 때문에 득이라면 득이었다. 그런 관계도 이즈미의 졸업과 함께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이즈미는 그럴 생각 없다는 듯 졸업 후에도 빈번하게 연락을 해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만남을 가지고는 했다. 만났다는 건 물론 잤다는 거지만.
그것도 츠카사가 해외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로는 뚝 끊긴 채였다.
차를 모는 동안 이즈미는 말이 없었고, 몇 마디를 던지던 츠카사도 이내 장시간에 걸친 비행의 피로와 대꾸 없는 이즈미에게 지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도착한 곳은 번화가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의 화식 요릿집이었다. 굳게 잠긴 현관문 양 옆에는 두 명의 가드가 서 있어, 일반인이 요기하러 들어가기에는 상당한 담력이 필요해 보였다. 이즈미는 익숙하게 얼굴을 보이고 “세나 이즈미인데” 한 마디 하고는 척척 걸어 들어갔다. 츠카사는 당황하여 뒤따라갔다. 얼굴이 통행증인 가게인가. 그런 곳이라면 츠카사도 몇 번인가 부모님을 따라 가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 이즈미는 부모의 동반이 아니라 저 혼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방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응. 안내 부탁해.”
널찍한 복도 양쪽으로 개실이 주르륵 늘어져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처음 온 손님은 거절할 법한 회원제의 유명인들이 찾을만한 가게. 그런 곳에 자기를 데려오는 세나 이즈미에 대해 생각하며 츠카사는 입을 다물고 뒤를 따랐다. 문을 열자 나타난 개실 내부 역시 다다미 6장 정도로 단 둘이 식사를 하기에는 꽤 넓은 방이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꿇어앉은 종업원이 문을 닫고 나자, 이즈미는 왜인지 이것보라는 듯이 츠카사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카사군.”
“뭘 말인가요?”
“카사군보다 저기 가드씨들이 내 얼굴을 잘 알아보는 거에 대해서 말인데?”
“세나 선배는 이곳의 단골이신가요?”
“내가 예약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과연. 좋은 가게로군요.”
“응응, 카사군이 나쁜 후배지? 형아 얼굴도 기억 못하고.”
“형아? 제가 그러한 호칭으로 부를만한 분은 텐쇼인 형님뿐이지만요?”
보란 듯이 미소지으며 하는 말에 이즈미는 화내는 기색 없이 웃으며 손짓했다.
“후후, 카사군 잠깐 이리 와 봐.”
“예?”
아직 츠카사가 유메노사키 1학년일 적이라면 대번에 간파했을 미소였다. 그러나 너무나 오랜만에 본 탓에 감이 둔해졌는지 츠카사는 불리는 대로 따라갔고, 당연한 귀결로 이즈미에게 목이 졸리는 것이었다.
“이 자식. 말하는 것도 아주 예쁘지이? 어디서 배워왔을까나?”
“스, Stop, 세나선배, Stop입니다. 쿠엑.”
다행히 곧 요리를 가져 온 종업원이 문 밖에서 ‘실례하겠습니다’하고 양해를 구했고, 츠카사의 인생이 19년 정도로 끝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장지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요리가 날라질 즘 이즈미는 이미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종업원에게 ‘고마워요’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 돌아가야 해?”
“엣.”
한참 식사 중이었다. 바쁘게 움직이던 츠카사의 젓가락이 뚝 멈췄다. 이즈미는 자신의 질문이 그렇게까지 동요를 감추지 못할만한 것이었나 반추하는 듯 텀을 두더니 다시 질문을 되풀이했다.
“카사군 언제 돌아가야 하냐고?”
그러자 츠카사가 젓가락을 아예 내려놓더니 머뭇머뭇 대답했다.
“그, 저어…….”
“저어? 뭔데?”
“그……오늘은…….”
“오늘?”
“……귀택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만…….”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태연한 척 하는 말이라는 것은 전해졌으나 얼굴이 붉어져 무의미했다. 그 말에 이즈미는 잠시 굳었다가, 얌전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가,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서 대답했다.
“…………아 그래?”
“뭔가요, 이 Term은?!”
“흐응. 그래. 오늘은 안 들어가도 되는구나? 나는 언제 영국에 돌아가야 하냐는 뜻이었지만?”
“아, 아웃?! 그, 그 쪽을 가리키는 것이었군요? 그거라면 일주일 후입니다만!”
“그 중에서 나한테 뺄 수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
“으음, 그건…….”
“그러니까 카사군이 귀택하지 않으셔도 되는 시간을 묻는 건데?”
“알고 있습니다!”
크으윽,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츠카사는 스케줄러를 꺼냈다.
“이틀 정도네요.”
“흐응. 언제랑 언제.”
“오늘과 내일입니다만.”
이즈미가 대번에 얼굴을 찌푸렸다.
“하아? 그건 빼고 얘기하는 거잖아? 그보다 오늘도 포함이라던가 말도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츠카사는 가볍게 어깨를 움츠렸다가, 좋은 방안이 떠올랐다는 듯이 밝은 얼굴로 덧붙였다.
“그래도 오늘 내일은 가능한 세나 선배의 요망에 맞춰 드릴테니, 그걸로 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