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나츠) 도너츠홀 샘플
※초반에 프로듀서가 등장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그 질문 앞에 나츠키는 멈추어서고 말았다.
나츠키는 쥐죽은 듯 조용한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테이블에는 High×Joker와 프로듀서, 여섯 명이 둘러 앉아있다. 조금은 떠들썩해도 이상하지 않을 멤버구성이지만, 모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가, 가끔 무언가를 종이에 적어 넣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츠키는, 다시 자기 몫의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발단은 약 10분 전, 프로듀서에게 받은 한 장의 종이였다. 정확히는, 인터뷰의 사전 질문지다. 나츠키뿐 아니라 모든 High×Joker의 멤버들도 하나씩 배부 받았다. 열심히 한 칸 한 칸 질문에 답을 적고 있는 멤버들을 보며, 나츠키는 내심 초조해졌다.
질문은 간단했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 좋아하는 영화, 그런 것에 대해 묻는 실로 평범한 질문.
“그래도 팬들은 이런 거 메가 신경 쓰이거든요!”
시키의 말에 프로듀서가 기세 좋게 바로 그거야, 하고 대꾸했었다. 그런가. 신경 쓰이는 걸까나? 나츠키는 마음속으로 반추하며 한 항목 한 항목 신중하고 간결하게 채워갔다. 모두 함께 수박을 먹거나, 축제에 간 것. 선배인 Jupiter의 토우마 같은 아이돌이……될 수 있으면 좋겠어. 좋아하는 영화에는 얼마 전 여동생과 감동하며 보았던 영화를 적었다. 다음 항목을 작성하기 전에 먼저, 하야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로듀서, 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우리 노래는 안 되는 거야?”
“음……. 그건 빼고 생각할까. 일단은 High×Joker에게 영향을 준 것들, 이런 거에 대한 기획 인터뷰니까.”
“가요가 아니어도 괜찮나요?”
“아, 그건 상관없으니까 그 부분에서는 자유롭게 적어줘.”
쥰의 추가질문이 끝나자 다들 납득한 듯 다시 고개를 숙이고 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나츠키도 항목을 작성하려다가 이내 손이 멈추고 말았다.
‘어?’
나츠키는 눈을 깜빡였다.
Q.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
지금껏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좋아하는 노래라면 많이 있지만, 그 중 첫 번째가 어느 것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쥰이 연주하는 곡은 모두 탁월했다. 하야토가 만드는 노래, High×Joker가 다 함께 연주하는 곡이라면 뭐든지 좋아했다. 프로듀서가 받아주는 곡도 모두 좋은 곡이었다. Jupiter의 곡도, 다른 315프로 소속 아이돌들의 곡도. 나츠키는 작게 신음했다. 그 많은 노래 중에서 단 한 곡을 골라낼 수가 없었다.
“와, 하야톳치가 뭔가 영어 쓰고 있슴다!”
“잠깐만, 시키, 보지 마!”
“어디어디, 와, 뭐라고 읽는 거냐, 이거?”
“아아, 저번에 말했던 그 밴드의 노래네요.”
“으응, 역시 제일 좋아하는 노래면 이걸까, 싶어서…….”
쥰이 얼핏 보고 말하자, 하야토가 코를 긁적이며 쑥스러운 듯 말했다. 슬쩍 보니 하야토뿐만 아니라, 다들 적당히 답란을 채운 모양이었다. 나츠키는 일단 그 질문을 뛰어넘고 다른 문항부터 답을 적었다. 좋아하는 음식, 휴일을 보내는 법, 가보고 싶은 여행지.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대체로 뭐든지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묻는 질문에만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때 프로듀서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아, 벌써 시간이. 다 작성한 사람은 지금 줘도 좋고, 좀 더 생각할 사람은 다음 주까지 제출해주면 되니까, 이제 돌아가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나츠키는 불안해져서 주뼛거리며 일어서 질문지를 들고 프로듀서에게 다가갔다.
“응, 나츠키. 무슨 일이야?”
프로듀서가 자상한 표정으로 먼저 물어주었다. 나츠키는 한숨 놓으며 더듬더듬 설명했다.
“제대로……답이 안 나오는 질문이 있어서……어떤 식으로 쓰면 좋을까?”
어디어디, 하고 묻는 프로듀서에게 나츠키는 제일 좋아하는 노래, 라고 조용히 말했다.
“으음, 그렇구나. 좋아하는 게 여러 곡이라 한 곡으로 좁히는 게 힘든 거지?”
나츠키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서는 부드럽게 웃었다.
“깊게 생각할 건 없고, 가볍게 써 주면 되는 거니까 부담가지지 마.”
“가볍게…….”
그 말이 나츠키의 마음을 그다지 가볍게 해주지는 않았다. 나츠키의 표정으로 그걸 간파한 듯 프로듀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잘 판단이 안 된다면, 그렇지, 그럼 이렇게 하자. 오늘부터 내일까지 나츠키가 들은 노래 중에 제일 좋다고 생각한 노래를 적는 걸로 하자.”
“아……그치만, 그렇게 해도…….”
“괜찮고 말고~.”
“응……. 알았어.”
나츠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 항목에 구멍이 난 질문지를 접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
“제일 좋아하는 노래?”
아아, 아까 그 질문지 말이지, 하고 하루나가 뒤늦게 납득했다.
“요전번에 하야토가 빌려줬던 CD에서 마음에 드는 노래가 있었거든. 나도 이런 음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거. 그걸로 썼어. 왠지 그런 느낌의 기획? 이었고.”
“그런……걸까나?”
여전히 석연치 않은 느낌으로 생각에 잠기는 나츠키를 보고, 하루나는 덩달아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예를 들자면 세상에서 노래가, 하나 빼고 다 사라진다고 할 때, 만약 내가 그 남길 노래를 고를 수 있다고 쳤을 때.”
“으……응?”
“그러니까 그런 가정을 하자면 말이지.”
“응.”
“그 때 그 노래를 고르면 후회는 안 할 거 같달까. 그렇게 생각하면 어때?”
“하루나, 거기까지 생각하고 고르는 거야……?”
“훗, 훗, 훗. 깜짝 놀랐지? 막 이래. 사실은 방금 떠오른 거지만.”
그리고는 ‘뭐 그렇게 따지면 역시 우리 노래지만’, 하고 멋쩍은 듯이 웃었다. 그 태도는 어쨌거나 비유는 나츠키에게 상당히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었다. 이 세상에 단 하나 남길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쥰의 피아노 소리였다.
“……제일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걸까.”
“음~…. 뭐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 아냐?”
“그건, 조금……쓸쓸할 것 같아.”
그 때 바람이 불어왔다. 두 사람이 걷고 있는 길의 가로수의 잎들을 하나하나 흔들며 사아아, 하는 소리를 내고는 천천히 옷자락을 끌며 멀어져갔다. 여름 무렵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나츠키를 스쳐 지나며 앞머리를 살짝 들추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할 때 하루나의 시선이 느껴졌다. 왤까 싶어 나츠키도 하루나를 마주보자, 하루나는 불현 듯 놀라며 시선을 돌려다.
“아……. 그, 그러게.”
“하루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하하, 나는 좋아해. 나츠키의 그런 상냥한 세계관.”
“응? 으응……?”
“아니아니, 그런, 뭐랄까, 진짜로 좋아하는 건 하나가 아니어도 되지만 말이야. 우리는 일단 아이돌이고, 세간에서 요구하는 캐릭터? 같은 게 있으니까 말이야.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뭔가 그런 거라고 예전에 프로듀서가 말했던 거 같은 기분이!”
“기분인 거구나?”
“아하하, 사실 무슨 말인지 나도 잘 몰라.”
쾌활하게 웃던 하루나는 갑자기 앗, 하고 소리 높여 외쳤다.
“하루나?”
하루나의 시선을 따라간 곳은 역 근처에 자주 가는 도너츠 가게였다. 그리고 문 앞에는 전품목 반액 세일을 알리는 간판을 든 아르바이트생이 서 있었다. 하루나의 눈빛에 갑자기 절박함이 감돌더니, 나츠키를 진지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들려도 돼? 아니, 들릴 건데 나츠키는 어떻게 할래?”
“나는, 편의점에 들릴 생각이니까……하루나, 다녀 와.”
“정말? 그래도 돼?”
“오래 걸린다 싶으면 끌어내러 갈 테니까…….”
오늘은 하루나의 집이 비는 날이다. 하루나는 그 사실을 어젯밤 문자로 전했다. 나츠키는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서 도너츠 모양 에모지를 잔뜩 찍어 보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내일은 친구 집에서 묵을 테니까 저녁은 없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오빠, 모레 저녁은 같이 먹을 거지?’하고 묻는 여동생에게 그럴 거라고 대답할 때쯤, 나츠키의 답장에 꽤나 고민한 하루나의 답신이 왔다.
-왜 도너츠인데?
편의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면서, 나츠키는 그 때의 자신의 마음을 떠올려보았다. 왠지 기쁘고 부끄럽고 간질간질한 것이 마음 속 차올라서, ‘응’이라고도, ‘알았어’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하루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레지에서 계산하고 있을 때, 문득 유리창 바깥에 주황색 뭔가가 움직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잘 보니 하루나가 문 밖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츠키는 편의점에서 칫솔이나 양말 같은 것을 사고, 하루나는 도너츠를 사서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풍경이.
“하루나.”
“우왓, 나츠키, 빨리 나왔네.”
“하루나야말로…….”
하루나는 왠지 어깨를 들썩이며 한숨을 쉬더니 혼자 웃었다.
“왜?”
“아니, 사실은 나츠키가 나오면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놀랐잖아 싶어서. 나츠키 얼마나 조용히 움직이는 거야? 닌자야?”
“후후, 날 놀래키는 건 하루나에겐 아직 일러.”
그리고는 하루나의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츠키는 한손에 편의점 봉투를 들고, 하루나는 도너츠 두 상자를 안고 있었다.
“두 상자나, 샀어?”
“나츠키, 도너츠는 얼마나 있던 부족한 거라구. 뭐, 하나는 저녁이고……훗훗훗, 하나는 내일 아침을 기대하시라.”
의미심장한 하루나의 말에 나츠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바가 있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 그리고 하루나, 이거…….”
“응?”
나츠키가 조금 기쁜 기색으로 하루나에게 꺼내든 것은 작은 종이쪼가리였다. 영수증. 결제금액이 315엔이었다.
“왠지, 대단하지.”
“우와, 진짜. 잠깐만, 이거 찍어서 라인으로 보내주자.”
“길거리에서, 위험해. 집에 가면, 하자?”
그 말에 하루나는 나츠키와 함께 집에 간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는지 그러네, 하고 멋쩍게 웃었다. 나츠키도 왠지 가슴 속이 답답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학교 친구끼리 서로 집에 놀러갈 수도 있고, 같은 소속사 동료끼리라도 꺼림칙할 것이 없건만, 두 사람은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이제부터 쥰에게도, 하야토에게도, 시키에게도, 프로듀서에게도. 누구에게도 알려줄 수 없는 일을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