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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황) Ex-mind 샘플

leftoverpeach 2019. 3. 22. 17:09








음 전화벨이 울렸을 때는,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농구부 연습을 마치고 자취하는 집으로 돌아와 막 열쇠를 꽂으려던 순간이었다.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발신인의 이름은 모모이였다. 키세는 고개를 갸웃하며 수신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모못치?”

“아, 키쨩, 연습 수고했어! 지금 돌아가는 길?”

“으응, 집에 도착한 참인데요. 무슨 일임까? 내일 볼텐데.”

그 말대로 내일은 카이조와 토오의 연습시합을 앞두고 있었다. 키세 역시 내일 있을 연습시합에 두근거리며 가장 늦게까지 남아 연습을 하고 온 참이었다.

“아, 그럼 봤어? 아니, 아직 안 봤구나?”

한 손으로 열쇠를 찾던 키세는 어깨에 대고 뺨으로 누르고 있던 휴대폰을 들어 통화하고 있는 상대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봤다느니 안 봤다느니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참고삼아 묻는데……뭘요?”

“으음, 그게, 저기, 엄청나게 실례인 줄은 알지만, 그치만 다이쨩 절대로 집합시간에 늦을 거니까. 응? 정말 미안해! 나중에 꼭 답례할게!”

“아니, 미안하다든가, 그런 게 아니고…….”

등줄기를 불안감이 훑고 지나갔다.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있는 한 편, 이건 그 상황 외에는 없다고 판단한 이성이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다급한 손길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럼 그렇게 됐으니까 내일은 다이쨩 잘 챙겨서 와줘! 내가 키쨩 정말 좋아하는 거 알지?”

“에? 에? 네에에?”

슬슬 키세가 눈치 챘다는 것을 깨달은 모모이는 얼른 인사를 끝마치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 손에 끊긴 전화를, 한 손에 스포츠백을 든 채 들어온 키세의 눈앞에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거실에 흰 보따리가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모이가 전화 중에 이야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하자면 내용물은…….

키세의 목소리를 듣고 더욱 격하게 버둥거리는 느낌이 들어 키세는 현관까지 뒷걸음질을 쳤다.

“우, 우와아……모, 모못치 장난이겠죠, 이거…….”

경찰에 신고할까하는 생각을 3초쯤 하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

우와 진짜 건드리기 싫다.

키세는 꿈틀거리는 거대한 보따리를 보며 그런 생각을 잔잔히 했다. 꾹 찔러보자, 더 힘차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키세는 각오를 다지고 보따리를 풀렀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도쿄에 있어야할 아오미네 다이키가 자기 집 거실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손과 발이 묶이고, 입에는 재갈이 물린 채였다. 너무나도 엄청난 광경에 키세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우왓, 아오미넷치 제정신임까, 왜 이런 델 들어가는 검까!?”

“∼∼∼!! ∼∼!!”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키세는 먼저 물린 재갈을 풀어주며 말했다. 겨우 입이 자유로워진 아오미네는 씹어뱉듯이 외쳤다.

“미쳤냐, 내가 좋다고 들어가게! 그 망할 선배놈들! 그리고 사츠키!”

“서, 선배놈들이라니, 토오의?”

키세는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하관계 분명한 카이조의 선배님들이 들었다면 멍석말이행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제 키세가 선배라고 부를 사람은 몇 명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럼 말고 누가 있냐? 그렇지, 야, 키세, 이것 좀 풀어 봐.”

아오미네는 턱짓으로 손과 발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에 대한 키세의 태도는 시원찮았다.

“에……싫슴다.”

“하?! 이러고 있으란 소리냐?”

“그치만 아오미넷치 태도가 불손한 걸.”

키세는 팔짱을 끼고 아오미네를 보았다. 그 눈빛은 다분히 반항적이었다.

“불손? 네가 불손이라는 단어도 아냐? 한자로 쓸 수 있어?”

“시끄럽슴다! 지금 그거 상관 없잖슴까!”

“애초에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하는데? 어?”

“그건 아오미넷치 본인의 부덕의 소치잖슴까!”

하기야, 키세와는 관계없는 일이긴 했다. 그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맨션 비밀번호가 유출되어서(모모이가 예상한 비밀번호가 정확히 맞은 것이었다) 집 안에 원치 않는 짐더미를 떠맡았으니 그런 의미로는 피해자이기도 했다. 키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윽고 좋은 게 떠올랐다는 듯이 씩 웃으며 말했다.

“풀어주세요, 라고 말하면 풀어줄 수도 있는데요?”

“아?”

아오미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입에서 나온 말은 ‘아?’였지만 하고 싶은 말은 ‘미쳤냐?’였다. 키세는 어깨를 으쓱했다.

“싫으면 말고요. 난 밥이나 먹으러 갈 테니까.”

그러고는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서 현관을 향해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야! 야, 키세 이러고 어딜 가!”

“밥 먹으러 간다니까요? 아, 아오미넷치는 여기 있든가요. 손발 묶인 채로는 못 나가잖슴까?”

키세가 망설임 없이 구두에 발을 꿰고 있을 때였다. 아오미네는 재빨리 생각했다. 일단은 풀고 봐야한다고.

“……세요.”

“네? 아, 안들렸슴다. 뭐라구요?”

일부러 귀에 손을 대고 자세히 들으려는 시늉을 하는 꼴이 얄밉기 짝이 없다. 아오미네는 일단 풀기만 해보라는 심정으로 우렁차게 외쳤다.

“풀어주세요! 라고 하잖냐!”

그러자 키세는 언제 무관심한 척 했냐는 듯이 폭소를 터트리며 아오미네에게 다가왔다.

“아하하하! 아, 아오미넷치도 참, 아하하하! 그걸 하란다고 진짜로 하는 사람이 어딨슴까? 아하하, 아, 안 돼, 너무 웃겨, 흐으흡. 아하하.”

“아오, 이걸 진짜…….”

“네네, 풀어줄게요, 풀어준다고요. 아이 착하죠~.”

“………….”

마음에 안 드는 점이 한 두개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손과 발의 자유는 되찾았다. 아오미네는 손목을 돌리고 손가락을 풀더니, 좀 전까지 손목을 묶고 있던 끈을 손에 쥐었다.

“아오미넷치는 참 은근히 솔직하단 말임다.”

“시꺼.”

“아하하, 삐쳤슴까? 농담이라니까요. 그보다 밥이나 먹고 오자고요.”

“그 전에 말이지.”

“응?”

——어라?

키세는 순간 몸에 이상을 느꼈다. 분명 오른손만 들어 올리려고 했는데, 왼손도 같이 따라 올라온 것이었다. 정확히는, 어느 새 오른손과 왼손이 묶여 있었다. 아까 아오미네의 손을 묶고 있던 그 끈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아오미네를 보자, 그는 씩 웃었다.

“헷?”

아니, 잠깐 방심한 그 사이에?

갑작스러운 예상 밖의 전개에 놀란 키세는 한순간 넋을 놓고 말았다. 아오미네는 그 틈을 찔러 키세를 침실로 끌고 들어가 눕혔다.

“무슨……! 뭐, 뭔데요, 갑자기! 지금 그런 분위기 아니었잖슴까!”

당황한 사이에 침대까지 끌려온 키세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아오미네는 그 위에 올라탄 채, 안 들린다는 듯이 귀를 후비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사실, 키세와 아오미네는 평범한 팀 메이트나 라이벌 같은 게 아니다. 서로 사귀자 어쩌자 확답을 주고받은 적은 없지만, 어쩌다 분위기가 맞으면 서로 손이나 입으로 해주는 관계가 테이코 시절부터 지속되어 왔었고, 얼마 전부터는 섹스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것도 키세가 하자고 했는지, 아오미네가 하자고 했는지 애매하다. 두 사람에게 물으면 서로 ‘아오미넷치가 좀 색골이라서요’, ‘키세놈이 좀 밝히긴 하지’ 라며 상대방이 멋대로 시작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