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조작
※카이죠 아카시
He sunshine→He starlight
“키세 선배.”
투웅, 퉁퉁.
등 뒤에서 들리던 소리는 도르르르 하는 소리로 바뀌며 가까워졌다. 등을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까까지도 익숙하게 들었던 소리. 농구공이 튀는 소리다.
키세는 뒤를 돌아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열린 체육관 문틈으로 환하게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을 등지고 서 있는 인영은 한 학년 아래의 후배의 것이었다. 역광에 잘 보이지 않았던 그의 표정이 빛에 눈이 익으면서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미소 짓고 있다. 선배에게 공을 던져놓고선. 그리고 입을 연다.
“공 좀 주워주세요.”
정해진 대사처럼.
아카시 세이쥬로입니다. 테이코 중학교 출신,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입니다.
그 후배는 그렇게 말하며 나타났다.
포인트 가드, 라는 말에 그를 보자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곱게 미소를 짓는다.
그가 키세 료타의 흥미를 끈 것은 입학식에 대표인사를 한 학년수석이라는 것이나, 유수기업의 외동아들이라는 소문이나, 여자매니저들이 수런거릴 정도의 미인이라는 것이나, 강호로 유명한 테이코 중학교 출신이라는 것보다, 포지션이 포인트 가드라는 것이었다.
포인트가드라고 하면 NBA의 어떤 선수나 다른 강호의 선수들보다도 올해에 졸업한 두 학년 위의 선배인 카사마츠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키세였다. 자존심 높은 키세가 인정하는 몇 안되는 선수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졸업을 했고, 카이조는 새로운 포인트가드가 필요했다. 일단 스몰 포워드이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어느 포지션이든지 가능한 키세를 팀의 사령탑으로 삼는 것은 어떤지에 대한 논의도 키세가 모르는 곳에서 벌어졌었으나, 결국 키세는 에이스로써 카이죠에 있는 것이 가장 옳다는 결론이 나와 결국 그 자리는 공석인 채였다. 그리고 감독이 스카웃해 온 것이 아카시 세이쥬로였다.
하지만 키세는 구태여 그를 높이 평가하려하지 않았다. 확실히 아카시 세이쥬로는 포인트 가드로써의 재능은 뛰어났다. 재능만을 따지자면 카사마츠보다 뛰어날지도 몰랐다. 그런 아카시에게 키세가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누군가는 키세보다 재능이 있어서, 혹은 키세보다 잘생겨서, 아니면 키세보다 여자한테 인기가 많아서, 심지어는 무명교 출신인 키세가 자격지심에 그러는 것이라고, 더 말하자면 중학시절에 테이코와 붙어 패배했던 적이 있는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사실은 아니었고, 실상은 그것보다 훨씬 단순한 이유였다. 그리고 키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납득할 만한 이유였다. 키세가 그토록 따르던 카사마츠보다 아카시의 실력이 더 낫다고 평가받는 것이 탐탁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저쪽에서는 그런 키세의 마음을 몰라선지, 알면서 일부러인지, 곧잘 키세에게 접근했다. 연습 중에는 조언을 구하고, 연습이 끝나면 같이 남아달라고 하고, 교실 이동 중에 굳이 말을 걸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옆에 있고. 체육수업 중에 문득 시선을 느껴서 위를 올려다보았더니 아카시가 손을 흔들었을 때는 진심으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그건 키세가 그 전년에 자기 선배들에게 했던 짓과 별반 차이는 없었지만, 이 경우 빈도가 문제가 되었다. 복도에 나가면 거의 백 퍼센트의 확률로 마주치니 이건 매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하루는 대체 뭐가 문젠지 알아내기 위해서 나한테 왜 이러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카시는,
“모르시겠어요?”
키세를 올려다보며 오히려 자기가 놀랐다는 듯이 묻더니,
“제가 키세 선배를 좋아하기 때문이겠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것이다.
오히려 곤란한 것은 키세였다.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교에 여러분 글쎄 아카시 세이쥬로가 게이랍니다, 하고 소문을 퍼트리면 그가 그만둬줄까? 다소 타격은 입겠지만 그렇게 되면 본전이라도 찾으려고 진성게이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싶어 그 안은 가장 먼저 각하되었다. 피한다? 거리를 둔다? 지금까지도 딱히 들이댄 것도 아니고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는데 이 사단이 났다는 점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하고 생각해 일부러 뻗대어봤지만 뭔가 반응이 돌아온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기뻐하며 다음 단계로 에스컬레이트해 버리려 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깨달아 관두었다.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는 구태여 할애하기로 한다.
어쨌거나 농구와 학업 둘 다 해내는 아카시의 노력에는 감탄할만한 구석이 있었고, 사실 농구를 하는 아카시는 솔직히 멋있었다. 무엇보다 후배에게 존경받는다는 일이 거의 없던 키세는 자기를 잘 따르는 후배가 생긴 게 남몰래 기쁘긴 했다. 그 벡터가 좀 수상쩍기는 했지만. 그런 고로 할 수 있는 모든 시도가 막히자 키세는 어정쩡한 태도를 고수했다. 때로는 그 기특한 태도에 가슴이 시큰해질 때도, 자길 올려다보며 짓는 안타까운 표정에 발밑이 꺼질 것 같은 때도 있었다. 그냥 못 이긴 척 넘어가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후배의 미래를 생각해선 그것도 아닌 듯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그런 채로 졸업을 했다.
“키세 선배.”
졸업하던 날에도 그는 당연한 듯이 찾아왔다. 농구부 단체로도 찾아왔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기다리길 기다려 아카시는 따로 키세를 찾아왔던 것이다. 아카시의 부름에, 키세는 겸연쩍은 듯이 웃었다. 한 손에는 졸업장을 들고,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아, 두번째 단추는 누구 줘버렸는데. 미안, 아카싯치.”
아카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괜찮습니다만.”
“에, 없어도 괜찮아?”
“네, 키세 선배와의 추억이 저에게 있으니까요.”
“………….”
“그리고 휴대폰번호와 자택주소 및 도쿄에서 자취하실 맨션의 주소도.”
“……감동을 부수지 말아줘…….”
그리고 나 주소 알려준 적 없는데, 하고 키세가 살짝 맺혔던 눈물을 닦아내며 말하자 아카시는 태연스럽게 괜찮아요, 제가 알아냈으니까요, 하고 대꾸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웃음이 터져서 하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자신을 위한 아카시 나름의 농담이리라 키세는 생각했다. 정작 아카시는 조금도 농담칠 것 같은 표정이 아니지만.
“키세선배, 아직 기억나지 않으세요?”
아카시는 고개를 들더니, 눈부신 것을 보는 것처럼 키세를 보았다.
“뭐가?”
해는 아카시의 등 뒤로 지고 있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키세선배와 요요기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요요기 체육관?”
“네.”
그야 만났겠지.
거기서 예선 시합을 하니까, 농구부 다 같이 거기 가니까. 키세는 그리 생각했다. 당연하지만 이 총명한 후배가 그런 뻔한 걸 물어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답이 막혀서 결국은 미안, 하고 뒷목을 긁자, 아카시는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하고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 어른스러워서 키세는 조금 미안해졌다.
말없이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키세는 버스를 타러 가야했고, 아카시는 묵묵히 따라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키세는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정류장에는 같은 교복의 학생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그도 그렇다. 다들 친구들과 마지막 추억을 만들고 있겠지. 보통 때였다면 키세도 그 쪽에 가세했을 터였다. 그러나 오늘만은 다른 약속은 잡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카시가 오기를.
키세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갈 꺼냈다. 그리고 주먹을 꼭 쥔채, 키세는 아카시를 보았다. 후배의 코끝이 왠지 조금 빨개져 있었다.
“아카싯치, 손 줘봐요.”
아카시는 얌전히 오른손을 펼쳤다. 키세는 아카시의 손바닥에 무언갈 떨구더니, 이번엔 다른 손으로 아카시의 손을 주먹쥐게 했다. 뭘 주었는지 지금 당장 알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봐도 될까요.”
“으응, 내가 가고 나서.”
“그렇게 할게요.”
그래도 키세는 아카시의 손을 꼭 쥔채로 있었다.
“버스가 안 왔으면 좋겠네요.”
아카시가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먼 곳을 보는 그 옆얼굴을 키세는 잠시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거기 뭐가 들었는지 평생 모를텐데여.”
“키세 선배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겠죠.”
“와, 치사해. 난 절대 말 안 해 줄거거든요. 빨리 버스나 왔으면 좋겠다.”
“………….”
“아, 지금 너무한다고 생각했죠?”
“………….”
“그치만 이대로라면 아카싯치 울 거 같잖슴까.”
그 때 버스가 왔다. 키세의 손이 떨어졌다. 버스를 향해 몇 걸음 걸어가던 키세가 뒤를 돌았다.
“그럼 아카싯치, 바이바이.”
나 없어도 잘 지내. 마지막 그의 입모양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버스가 떠났다. 그 모습까지 눈에 새겨넣고 손바닥을 펼쳐보자, 교복 단추가 쥐어져 있었다. 아카시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한참을 서 있었다. 해가 지고, 별이 뜰 때까지.
*연하공 좋아하시나요.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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