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세가 다른 기적의 세대와 쿠로코, 모모이보다 6년 늦게 태어난 설정.
※성인과 미성년자 사이의 성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1. Sweet Sweet Sweet
(전략)
키세와 만난 건 어느 바에서였다. 대학에서 멀리 떨어진, 소위 말하는 하룻밤을 보낼 상대를 물색하는 곳이다. 술도 맛있고, 상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아카시는 좋아했다. 그곳에 키세는 당당하게 앉아있었다.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는 용모였다. 늘씬한 장신에, 얼굴은 말할 것도 없는 미인. 조명에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 아래, 눈동자는 부드러운 다갈색이고, 티 없이 흰 뺨은 부드러운 윤곽을 띄고 있어 어딘지 앳되어 보였다.
자신의 용모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걸 알고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도 호감을 주었다.
성은 키세라고 했다. 이름은 밝히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으니 굳이 묻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말도 잘 통하는 상대였다. 어휘력의 차이는 있었으나, 사고방식이 닮아있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대로 호텔로 데려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연락처가 적힌 메모만 남아있었다.
보통 이런 때, 아카시가 연락을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이건 불가항력이었다. 이렇게나 상대방에게 끌린 적은 없었다.
이대로 끝내는 건 아까운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키세는 연락에 응해 아카시와 만났다. 물론 만나서 한 일은 처음과 똑같았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이 지속된 후, 약간은 친밀해졌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함께 아침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항상 새벽에는 이미 없어져버리던 키세가, 그날따라 깊이 잠들어 아침까지 깨지 못했던 것이다.
호텔 방문을 닫는 순간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고 옷을 벗기려 달려들었던 두 사람이 오히려 평범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있으려니 어색하다는 것도 웃긴 이야기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의식해버린 탓인지 툭툭 끊어지던 대화의 맥은, 취미 이야기가 나오자, 순식간에 활기를 띠었다. 아카시가 농구를 좋아한다고 밝히자, 그도 농구를 한다는 얘기를 꺼낸 것이다. 좋아하는 선수 얘기, 학창시절 이야기를 거쳐 둘 다 테이코 출신이라는 생각지 못한 공통점이 발견되어 아카시는 한 층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상대는 심지어 지금 테이코 재학 중이라고 했다.
거기서 아카시는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 테이코 재학 중이라는 건, 즉 중학생이란 뜻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 마시고 있던 것도 술이 아니었고, 입고 있는 검은 슬랙스와 갈색 로퍼는 테이코 지정 복장이다. 참고로 나중에 알았지만, 그간에 새벽마다 사라진 것은 기숙사에 사는 신분으로 점호가 없는 날에 무단외박하고 새벽에 몰래 들어갔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말이 뚝 끊겨버린 아카시의 모습에 뒤늦게 자신의 실언을 깨달은 키세가 핫, 하고 굳어진다. 아카시는 한숨을 쉬었다.
“확인 차 묻겠다만……키세는 중학생인건가.”
“……그게…….”
“그러고 보니 테이코 OB들이 농구부에 키세 료타라는 선수가 들어온 덕에 오랜만에 우승을 노려볼만하다는 얘길 했었다만…….”
“그게…….”
“그게 키세인건가?”
“그…….”
키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을 고르더니, 아카시의 눈치를 보았다.
“맞다고 하면 나랑 안 잘 거예요?”
그 말을 하는 키세의 표정의 처량함이란.
아카시의 마음속에서는 자기를 속였다는 배신감과 키세의 귀여움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귀여움이 근소하게 이겼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연하잖아.”
“그럼 아님다.”
“‘그럼’이라는 단서가 이미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아카싯치 못 만나게 되는 건 싫은 걸.”
“………….”
배신감을 이기고 올라간 귀여움은 대기하고 있던 모럴과 맞붙었고, 이번에는 큰 차이로 압승을 거두었다.
아카시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키세를 좋아해. 부끄러운 얘기지만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끌려본 적이 없어. 절대로 놓치기 싫다고 생각해. 그러니까……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줘.”
이 고백 문구에 흠 잡을 곳은 없다. 아카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서 이렇게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예상외의 사태에 그럭저럭 괜찮은 답을 내었다고 생각했다. 진심을 알아주면 키세도 납득하겠지. 그러나 키세는 전반부에는 얼굴이 활짝 피었다가, 후반부에는 싹 굳어버렸다. 이 반응은 대체, 하고 아카시가 생각하는 사이 키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른이 되면’이라구요? 내가 왜 그 때까지 간식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기다려야 하는데?”
“뭐?”
“나는 내일이라도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사람도 만날 수 있거든요? 물론 아카싯치는 좀 아깝지만……그래도 아카싯치가 싫다면 여기서 안녕이에요.”
키세의 표정은 지금껏 본 적 없이 진지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이건.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키세 나름대로의 협박에 불과했고, 진짜로 그럴 생각은 없었으리라는 걸 알지만, 그 때의 아카시는 처음으로 느낀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걸 느낀 상대가 알고 보니 중학생이었다는 사실에 2연타를 먹어 HP는 이미 제로였다.
하지만 미성년자라는 걸 안 이상 손을 대는 건 상식적으로 아웃이다. 즉 아카시가 하고 싶은 것이란, 아무래도 키세를 사랑하니까 역시 섹스는 하고 싶은데 미성년자인 점은 걸리니까 성인이 돼서 오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건 키세가 듣기에는 코웃음이 나오는 요구인 게 당연하다.
아카시가 할 일은 간단하다. 키세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연락처를 삭제하고 그에게 또래와 교제할 것을 권장한 후, 그의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 후 키세가 또 다른 연상의 남자를 만날 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카시의 소관 밖의 일이다. 거기서 무슨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아카시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이성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딱 나누어떨어지는 답이 있다고. 그렇다면 그걸 고르면 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카시 세이쥬로이며, 그것에 이견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아카시는 그걸 필사적으로 못 본체 하고 있다. 다른 묘안이 없어 망설이는 척을 하고 있다.
주도권은 처음부터 키세에게 있었다. 아카시가 키세에게 반해버린 때부터.
“어떡할래요, 아카싯치.”
그렇게 하자고 말해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남남이고, 너와 난 관계없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곤란해.”
그런 상황을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화가 치미는데, 그런 걸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그렇게 시작된 미묘한 관계였다.
키세가 연애나 사랑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면 또 이 관계도 변화가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그건 좀 더 앞일이다. 다만 키세를 애인의 자리에 앉혔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도 잠시, 아카시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한 번은 밸런타인데이였는지, 화이트데이였는지, 선물을 잔뜩 받아온 키세에게 그렇게 인기가 많은데 왜 또래와 사귀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키세는 왜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나한텐 아카싯치가 있으니까.”
하고 말했다. 그 말은 아카시를 대단히 기쁘게 했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왜 아카시를 선택했냐는 것이었다.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일과를 보내는 것도 아닌 아카시를.
그 말을 들은 키세는,
“응? 에, 그거 진지한 얘기? 잠깐만…….”
그러고는 턱에 손을 대고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이윽고 손가락을 딱 튕기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속궁합.”
“………….”
방금 키세가 가진 고민의 시간은 뭐였던 걸까.
아카시 세이쥬로는 남들보다 가진 게 많은 인간이다. 그만큼 키세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많았다. 좋은 곳에서 좋은 것을 보고 배우게 해 줄 수도 있고, 맛있는 것을 먹게 해 줄 수도 있었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줄 수 있다. 그 정도 여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키세는 그것들에는 놀라우리만치 관심이 없었다. 집안도 능력도 재력도 다 상관없이 오직 아카시를 원했다. 그가 흥미를 가지는 건 오직 아카시. 아카시의 맨 몸뚱아리. 당장 아카시 집안이 거리로 내앉게 되고 아카시가 모든 능력과 재력을 잃는대도 키세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제가 먹여 살린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아카시라는 사람 하나만을 보고 원하는 인간은 세상에 키세 하나뿐이었다. 문제는 그 애정의 정도와 방향의 벡터가 약간 빗나간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말 약속을 잡기 위해 연락을 취할 때.
아카시가 데이트 플랜을 제시하며 저녁은 뭘 먹을까? 하는 아주 간단한 질문을 키세에게 넘겼을 때였다.
이런 때 아카시는 자기 메시지 앞에 뜬 ‘미독’이라는 글자가 ‘기독’으로 바뀌는 순간을 지켜보며 답지 않게 내심 떨고 있다. 그러고 있으면 아니나 다를까 키세는 이런 대답을 한다.
나는 아카싯치가 먹고 싶은데……♥
메시지와 함께 조르는 표정의 사진을 보내오니 아카시가 한 순간 철벽의 이성을 잃고 레스토랑 예약 대신 호텔 예약을 하는 우를 범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니, 논점은 그게 아니다.
먹고 싶다면 얼마든지 먹어도 좋지만,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아카시가 키세를 먹겠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이런 저런 것들을 너무 뛰어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언제나 아카시를 괴롭혔다. 하룻밤 상대라면 꼭 그렇지도 않겠지만, 연애관계에서라면 정신적 교감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몸의 궁합은 무섭도록 좋아서, 막상 그런 분위기가 되면 아카시도 키세를 밀어낼 마음이 들지 않고, 그저 끝난 후에야 아아 그러고 보니, 하고 후회할 뿐이었다.
물론 호텔 룸서비스로 먹는 요리도 식사는 식사지만, 그 품질도 결코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아카싯치, 나 배고파졌슴다.”
키세가 그렇게 말하니까 배에 뭔가 넣기 위해서 먹는 음식에 불과하다. 좀 더……좀 더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할 순 없는 건가. 이래서야 모든 게 섹스에 딸린 부가적인 수순에 불과하다.
――굳이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는 게 아닌가?
그런 아카시 세이쥬로 인생에 있음직하지 않은 고민마저 하게 되는 것이다.
***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키세는 여전히 방심한 상태로 침대에 널브러져,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안 자고 있었어?”
“응, 아카싯치가 깨있으니까…….”
오늘도 귀중한 데이트를 러브호텔에서 시작해서 러브호텔에서 끝내버렸다. 하다못해 호텔이라도 좋은 곳을 가면 좋겠지만, 언제나 예정에 없이 욕정해서 눈에 띄는 러브호텔에 뛰어 들어가니 이 모양이다.
수학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아, 재밌었다’라며 기분 좋게 지친 키세의 모습에 아카시는 조금 두통을 느꼈다. 키세가 만족한다면 그것도 좋지만, 이런 즉물적인 행위에는 금방 질려버릴 게 뻔하다. 그걸 알면서도 자신을 침대로 끌어들이는 키세를 만류하지 못하는 건 얄미울 정도로 속궁합이 좋기 때문이다. 그것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호기심과 탐구욕은 얼마나 끝내주는 지 두 사람은 만난 지 반년도 안 되어 이미 체위 48수를 전부 떼었다. 반년이라고는 해도 거의 주말에만 만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호기심과 탐구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도 않아서 이 근방에는 그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러브호텔이 없었다.
“내일은 어떻게 할까. 키세는 가고 싶은 데나 하고 싶은 거 있어?”
아카싯치랑 침대에서 섹스, 라는 대답만 아니라면 뭐든지 받아들이기로 하고 키세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러자 키세는,
“응……아카싯치, 나 이거 해보고 싶슴다.”
부끄러운 듯 미소 지으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좀처럼 없는 키세의 요구에 아카시는 기대와 경계를 품으며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아카시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면 가득 핑크빛으로 장식된 <여름의 풍물시! 야외 간음시리즈 특집! 여름이다! 축제다! 청간이다!> 이라는 외설적 타이틀의 마토메 기사였다.
“………….”
“생각해보면 우리 항상 호텔에서만 했잖아요. 가끔은 야외활동도 좋지 않슴까? 응? 아카싯치~. 여름이 아니면 못 한다구요?”
야외활동의 쓰임 잘못된 거 아닌가.
그런 태클은 마음속으로만 하고, 아카시는 졸라대는 입술을 키스로 막으며 머릿속으로는 내일의 데이트플랜을 짰다.
당분간 아카시의 고민은 계속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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