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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t.

(하루나츠) 오프샷

by leftoverpeach 2018. 3. 30.

2018.1.14 NEXT ST@GE에서 배포한 것의 웹재록 

 【오프샷】사카키 나츠키 카드의 체인지 전 대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쿄의 밤하늘은 까맣지 않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아, 하고 숨을 내쉬며, 올려다본 대형전광판. 희미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고개를 드는 행인들이 몇 있다. 노래하며 쉼 없이 움직이는 아이돌들의 얼굴이 전광판에서 재빠르게 스쳐지나간다. 대부분 모르는 얼굴이지만 몇 명은 아는 얼굴도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야간모드로 전환하고 그가 나오는 타이밍을 노려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끊임없이 연사하는 찰칵찰칵찰칵 소리에, 근처에서 나와 비슷하게 사진을 찍던 사람들의 불온한 시선을 내게 향한다.

 이 전광판을 그와 함께 올려다봤던 날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전광판에 나오는 세계의 사람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올려다보는 사람이었다.

 

***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나는 가장 먼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집안 사정이 골치 아파서 하루빨리 돈을 모아 집에서 나가고 싶었고, 반항 심리에 젖은 나는 용돈 좀 달라고 부모에게 말을 거는 것도 쪽이 팔렸던 것이다. 가능한 시프트를 채워서, 주말은 물론 방과 후에도 시간이 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와카자토 하루나를 알게 된 것은 그쯤이다.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되었다. 같은 학교 선배라는 걸 알게 된 건 더 나중이다. 내가 하루나 선배를 알았을 때 그는 이미 한 번 유급해 3학년을 두 번 다니고 있었고, 나는 막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처음해보는 접객업에 우왕좌왕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루나 선배에게도 여러 번 신세를 졌지만, 선배는 가볍게 웃어넘기면서 나를 커버해주었다. 그는 이 아르바이트만이 아니라 다른 아르바이트를 몇 개나 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급료를 다 여기에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도너츠를 사줬다.

 내가 부모님과 싸워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하자, ‘? 여자 친구 같은 소릴 하는데하고 놀리면서도 흔쾌히 자기 집이 비니 하루 자고 가라고 했다.

 돌아가는 길,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을 사서 나오자, 먼저 나와 있던 하루나선배가 빌딩의 대형전광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쿄는 말야, 밤에도 하늘이 밝지 않아?”

 내가 옆에 온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말했다. 그렇네요, 라는 나의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루나선배는 잠시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만, 내게 고개를 돌렸을 때는 웃는 얼굴이었다.

 “아니, 별이 잘 안 보인다 싶어서.”

 그는 또 유급했고, 봄부터 밴드를 시작했다. 들으러 오라는 가벼운 권유에 몇 번 라이브를 보러 가기도 했다. 빛나고 있다. 왠지 좋다고 생각했다. 멋있다고 말하면 아하하, 고마워, 하고 대꾸한다. 정말로 멋있어서 그 사실을 말한 건데, 그는 모른다. 그리고 점차 시프트를 줄이더니, 결국은 나와의 접점이었던 이 가게를 그만두었다.

 “부모님하고 싸우지 말고.”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 간다. 도쿄의 하늘은 까맣지 않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알려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보았을 그 웃는 얼굴보다, 도쿄는 밤에도 하늘이 밝지 않냐고 말하던 얼굴이 잊혀 지지 않았다. 나는 어슴푸레한 도시의 하늘을 볼 때마다 그 옆얼굴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런 나를 두고 그는 아이돌이 되었다. 스스로 밤하늘을 밝히는 존재가 되었다.

 

***

 

 청소시간, 우연히 복도를 걷는 그를 발견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을 거려다 멈칫했다. 말을 걸어도 되는건지 망설여졌던 것이다. 아이돌이 됐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세계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하루나 선배는 신경이 온통 딴 데에 팔려있는 느낌으로 나를 지나치더니, 이과준비실에 들어갔다. 나로 말하자면, 어라, 선배 나를 못 봤나, , 선배 잠깐만요, 라는 느낌으로 그를 따라왔다가 이어지는 전개에 얼어버리고 말았다. 이과준비실 안에는 문이 하나 더 있다. 하루나 선배는 목적지가 확실한 사람처럼 성큼성큼 들어갔고, 내가 망설이는 사이 일은 시간되었다.

 “어라, 이런 데에 미남이 있잖아.”

 “……하루나.”

 “벌써 동복 입었어?”

 목소리로 짐작컨대, 상대방은 High×Joker의 멤버였다. 목소리를 다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다섯 명 다 캐릭터가 분명해서 말하는 속도나 말투만 봐도 소거법으로 누군지 알 수는 있다. 조금 느린 말투에, 침착한 목소리에, 하루나 선배를 하루나라고 부르는 걸로 봐선, 사카키 나츠키일 것이다. 나에겐 일단 선배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미남은 미남이지만, 무표정하고 인간미가 없어 보이는 얼굴이라서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우울해 보이는 캐릭터랄까, 표정이 별로랄까, 하여간 그런 잘생긴 얼굴로 그 정도까지 존재감이 없는 게 오히려 꺼림칙하다.

 “하루나도, 심부름?”

 “아니? 왠지 모르게 나츠키의 기척이 난다 싶어서.”

 “뭐야, 그게.”

 뭐야 그게라는 건 뭐야. 하루나 선배는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당신 뒤를 쫓아서 들어온 거라구.

 아니, 나도 알고 있다.

 지금 여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남들의 대화를 엿듣는 건 좋지 못한 행실이다. 이래선 마치 쁘띠 스토커나 다름없다.

 가능한 소리를 내지 않고, 기척을 죽이고, 나온 길을 되돌아가서,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나 선배가 더 미남이 아닌가, 하는 불모한 생각이나 하는 편이 좋다. 그러나 왠지 발밑이 불안하고 손가락이 오싹거려서,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주제에 귀는 문 너머로 의식을 집중하고 있으니, 머리는 거부해도 몸은 본능에 충실하다는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성립하였다.

 내가 혼자서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문 안 쪽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대화가 계속되었다. 얘기를 걸어서 즐거울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하루나 선배의 목소리는 하여간 들떠있었다.

 “요즘 단 둘이 있을 기회 별로 없었으니까 좋다.”

 “그래……? 다 같이 있을 때도, 하루나 즐거워보였는데.”

 “그야 그렇지만, 그 땐 이런 거 못하잖아?”

 “? 하루나, 잠깐………….”

 정적.

 뭐?

 뭐?

 뭐야?

 뭔데, 이 텀은? 뭔데?

 이 타이밍은 그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서 이 도둑고양이, 잘도 내 하루나 선배를, 이라고 말할 타이밍인가? 이런 현실도피를 상당히 진지하게 하고 있는 와중에도 정적은 끝나지 않았다. 이윽고 긴 정적이 끝나고, 둘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것까지 잘 들리진 않았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끌어안고 스스로도 놀랄 만큼 침착하게 준비실에서 나왔다.

 이건 절대로 알아선 안 되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편, 다른 쪽의 뇌는 어째서? 하루나 선배, 어째서? 하고 그를 질책하는 내가 있다. 그 때, 내가 마음을 가다듬는 것보다 빨리 준비실 문이 열리며, 사카키 나츠키가 나왔다. 그럼 나, 쥰한테 가볼게, 하고 말하며 멀어진다. 하루나 선배는 준비실 입구에 서서 멀어지는 뒷모습을 본다. 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스쳐지나간 사람의 뒷모습을 뒤쫓는 건 어느 시대에나 사랑의 기본 형태이기 때문이다.

 

***

 

 내가 그와 대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였다. 충격이랄까, 놀라움 같은 감정은 희석되어, 그 때는 왜 사랑이라고 확신했지, 아무런 근거도 없지 않은가, 확대해석이다,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을 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점심시간. 선생님이 교실까지 옮겨달라고 부탁한 프린트물을 들고 가던 중, 꺅꺅거리며 술래잡기를 하는 한 쌍의 남녀에게 부딪혀 몇 장을 복도에 흘리고 말았다.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처량하게 줍고 있으려니 몇 장이 부족했다. 그 때였다.

 “떨어뜨린 건, 이게 전부야? , 여기.”

 갑자기 옆에서 들린 말소리에 어깨를 움찔했다. 사카키 나츠키다. 부탁한 적도 없는데 프린트물을 모아서 건네주는 사카키 나츠키. 바로 옆에 있는데도 이렇게 존재감이 없나. 하루나 선배는 왜…….

 “…………죄송합니다.”

 “아니, 신경 쓰지 마……. 왜 그래?”

 사카키 나츠키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가까이서 실물을 본 건 처음이라 솔직히 당황했다.

 “저어, 저번에……봤어요.”

 스스로도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는 사이에 말이 빠져나왔다. 이과준비실의 이야기다. 그러나 사카키 나츠키는 잠시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짐작 가는 게 있는지 조그맣게 탄성을 뱉었다.

 “아아, 요 전번 방송, 봐줬구나.”

 그게 아니지만, 방송을 안 본 것도 아니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은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이 뒤얽혀서, 목구멍에서 말이 꽉 막혀버렸다.

 그런 다정한 표정도 하는 줄 몰랐다.

 멀리서 볼 때는 무표정하고 차갑고 도도해보이던 얼굴이, 순간 꽃봉오리가 피어나듯이 화사한 미소를 띠웠다. 부드럽게 좁혀지며 생면부지인 나에게도 웃어주는 그의 눈빛에 나는 눈을 돌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인간미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이런 건, 그렇게 웃는 건.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아름다운 얼굴로 그렇게 부드럽게 웃어준다면 그건 당연히 누구나 호의를 품을 수밖에 없다. 왜 몰랐을까. 누구보다 하루나 선배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면서. 지금이라면 정답지를 보고 문제를 푸는 것처럼 명확하게 풀이까지 설명할 수 있다. 하루나 선배는 분명 저런 형태의 인간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얼굴 생김만이 아니라, 그의 윤곽, 그의 분위기, 그를 둘러싼 공기, 그가 만들어내는 영향들, 그의 어깨에 닿아 부서지는 햇빛, 손가락의 움직임, 작은 입술이 열리고 목소리가 나오기까지의 공백, 그런 것들을.

 나는 목소리를 짜내 이렇게만 말했다.

 “……저어, 응원할게요.”

 “후후, 고마워.”

 단순히 아이돌 활동을 응원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아마 본심은 전해지지 않았겠지만 그가 기쁜 듯이 미소 짓고 있으니 뭐, 상관없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하고 인사하자, 그는 가볍게 대답하고 가던 길을 갔다

 하루나 선배를 잘 부탁한다는 인사는 마음속으로만 하고, 그 뒷모습에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