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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t.

(이즈츠카) 열리지 않는 창문 샘플

by leftoverpeach 2019. 4. 25.

 ※오메가버스 이즈츠카입니다~~! 
해당 소재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열람을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긴 회랑에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울렸다.

딱히 그를 찾아가는 것 자체는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남들 눈을 피해야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스오우 츠카사는, 이 교회의 돌바닥은 너무 발소리가 잘 울린다고 생각하며 더욱 조심스럽게 걸었다.

똑똑, 두툼한 나무문에 대고 두어 번 노크한다. 둘 사이에 특별히 정해진 암호 같은 것도 없다. 그래도 그는 안다.

“들어와.”

말끝을 조금 늘리는 그 특유의 음성. 츠카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책상을 보고 앉은 그의 등이 보인다.

“그래, 카사군.”

이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고, 기척만으로 츠카사를 알아차린다. 츠카사는 말없이 그를 기다린다. 그러고 있으면 그는, 세나 이즈미는 이윽고 안경을 벗으며 츠카사를 보는 것이다.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왔어?”

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로.



세상에는 세 가지의 인간이 있다.

알파와 베타와 오메가가 그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들은 모두 겉보기에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성질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먼저 알파. 그 수가 적고, 태생적으로 엘리트이며 우두머리의 기질을 가진다. 대체로 귀족이었다. 신체능력과 지적능력이 뛰어났고, 신체의 성별과 상관없이 발정기의 오메가를 수정시킬 수 있다.

한편 오메가의 가장 큰 특징으로 10대 후반부터 약 3개월에 1번의 빈도로 ‘히트’라 불리는 발정기가 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때의 오메가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렬한 페로몬을 발산하고. 그 자신도 강렬한 번식욕에 사로잡혀 그 밖의 일은 거의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또한 그 상태의 오메가와 접촉하면 아무리 이성적인 알파라도 거스를 수 없는 강렬한 발정상태를 일으킨다.

그리고 인구 피라미드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며 히트니, 페로몬이니 하는 것과는 거의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이 베타였다.

역사적으로 이 셋은 시대와 사상에 따라 그 사회적 위치를 여러 번 바꾸며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종교의 시대. 신의 은총이 가득한 시대. 왕 위에 교황이 있으며, 신의 말이 가장 높은 뜻이 되는 시대. 따라서 인간의 본능을 억누르고, 금욕적으로 절제하며 신의 뜻에 따라 검소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인간으로 여겨졌다. 귀족이나 왕족이라 해도 아무 때나 연회를 열고 술판을 벌이고, 첩실을 늘리는 등 향락에 빠졌다는 소문이 퍼지면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판국이니, 발정기가 오면 서로의 페로몬에 거역할 수 없는 알파와 오메가는 몹시 비이성적인 인간으로 여겨졌다. 교단은 혼외관계를 강하게 지탄하고, 발정기가 오면 눈이 뒤집혀 짐승처럼 교접을 한다며 알파와 오메가를 비난했다.

성직자들은 대부분이 히트 따위에 좌우될 일 없는 이성적인 베타였고, 알파나 오메가의 귀족들은 스스로의 성분을 부끄러워하며 페로몬을 억제하는 약을 복용해 베타인 척 하거나, 알파나 오메가로 태어난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교회에 보내 신의 집에서 자라게 함으로써 그 성질을 지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본래 알파와 오메가의 성질은 세례나 회개 따위로 덮을 수 없는 인간 신체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을, 인간의 본능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신의 뜻 아래에서는 그게 가능하다고.

츠카사 역시 그렇게 해서 교회로 보내진 아이 중 하나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름난 기사였고, 어머니는 궁정시인이었다. 신앙심이 깊고, 충성심이 강하며, 성실하고 베풀 줄 아는 성정으로 교단과 왕실과 마을에서 두루 인정받는 부부였다. 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알파의 외동아들이 츠카사였다. 츠카사는 마치 본보기처럼 사춘기가 되기 전에 교회에 보내졌다. 일곱 살을 막 채웠을 때부터 이미 기숙학교에서 자랐다.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츠카사를 채운 것은 부모나 가족 간의 인간적인 접촉이 아니라, 절제와 근검과 교리와 학문이었다.

 

츠카사는 교회 안에서도 대단히 모범이 되는 아이였다. 고운 말씨에, 단정한 품행. 문제를 일으킨 적이라고는 한 번도 없었다. 교회에는 가끔 좀 더 나이 많은 아이가 자기보다 어린 아이의 돌보미 역할을 맡을 때가 있었다. 츠카사를 돌보겠다고 한 것은 리츠였다. 그는 츠카사보다 두 살 많았고, 유서 깊은 사쿠마 가문의 아이였고, 알파였다. 재밌을 것 같으니까, 라며 자진했다. 그는 여러모로 느슨한 구석은 있지만 요령이 좋았다. 츠카사에게 성서 밖의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 했고, 몰래몰래 간식을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츠카사는 예배시간마다 사라지는 그를 찾아 교회 부지를 뛰어다녀야했고, 예배당에 앉혀놓으면 꾸벅꾸벅 조는 그의 옆구리를 수시로 찔러야했고, 때로는 리츠의 베개역할을 하느라 저녁시간에 늦기도 했다. 그를 반면교사로 삼았지만, 간식은 군말 없이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츠카사에게 첫 시련이 찾아왔다. 취침시간이 지났는데 츠카사가 침대를 벗어난 것은 아마도 그게 처음이었을 것이다. 리츠 선배, 리츠 선배, 하고 츠카사가 울면서 찾아왔을 때, 리츠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고는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가 잘됐네, 스∼쨩. 이제 오메가를 임신시킬 수 있는 거야, 라고 말하자 츠카사는 더욱 크게 울기 시작해 결국 사태는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몽정이며, 몽정이 무엇인지를 이해한 후에 겨우 츠카사는 진정했지만, 리츠의 말은 언제까지고 잊지 못했다. 또래 애들이 장난을 치며 뒷산을 뒹굴 때도, 그는 성서 한 줄을 더 읽었다. 주일이면 교회에서 성가대로 노래를 했다. 그는 귀족이고, 교단은 그의 부모에게서 막대한 헌금을 받으며 그를 교회에서 키우는 있는 것이었지만, 마치 다른 신자들처럼 교회의 허드렛일도 했다. 창문을 닦고, 식료품을 나르고, 예배당을 쓸었다. 츠카사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자신 안의 알파의 성질을 느끼지 못했다.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리츠는 교회를 떠났다. 그럼 스∼쨩, 밖에서 또 만나자, 하며 교회를 뒤로 하는 그에게 츠카사는 손을 흔들었다. 귀족 아이들은 일정 연령이 되면 교회를 떠나야했다.


세나 이즈미가 교회에 온 것은 그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는 수도사는 아니었다. 의사였다. 성직자 다음으로 베타가 많은 직군이었다. 예배당 뒤쪽 회랑 끝의 빈 별채가 그의 의원이 되었다. 거기서 그는 교회의 후원으로 어떤 약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보통 아름다운 외모는 알파의 것이었지만, 그는 베타임에도 아름다운 은발과 푸른 눈을 가졌다. 항상 깨끗한 흰 가운을 입고 안경을 썼다. 병자가 생겼다고 하면 마을로 검진을 나갔고,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약을 만들어주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키를 재주었다. 가끔 마을 사람에게 받은 간식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츠카사는 ‘저는 어린애가 아닙니다’라며 더 어린 아이들에게 주기를 권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면 어느 새 자신의 주머니에 초콜릿이며 사탕이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중략)


“세나 선생님은 약을 만들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응, 뭐. 굳이 따지자면 그쪽이 본업이지?”

“어떤 약인가요?”

“흠……쉽게 말하자면, 오메가의 히트를 막는 약.”

그 말에 츠카사는 깜짝 놀라 이즈미를 보았다.

“세나 선생님.”

“응. 왜?”

“매일 한량처럼 놀고 계신 줄만 알았더니, 생각밖에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이 자식, 꼭 쓸데없는 말이 한마디씩 붙는단 말이지이?”

“하지만 그 약이라는 건 이미 있지 않던가요?”

“그렇긴 한데, 지나치게 비싸서 좀처럼 보편화되질 않고 있거든. 하지만 그러면 안 그래도 히트 중에는 일할 수 없는 오메가들이 구하기 어렵잖아? 게다가 체질에 따라서 효력이 다르기도 하고. 히트는 일주일이나 계속되는데 말이야. 그래서 이성과 절제를 신봉하는 교회에서는 억제제의 개량에 힘쓰고 있다는 거. 싸고 대량으로 보급할 수 있고, 체질에 상관없이 효력이 있는 억제제를 말야.”

“하지만 그런 것이 없어도 신앙과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충분히 자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흐음. 그렇군요.”

이즈미는 코웃음 쳤다.

“흥.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그런 거로 성질은 변하지 않거든?”

“하지만…….”

“교회도 그건 잘 알고 있다고. 아까 말한 억제제도 말이야, 교회도 자선사업으로 하려는 일이 아니야. 헌금을 받고 파는 거지. 신의 은총이라면서.”

“……저는 반대라고 생각하지만요. 신의 은총 같은 형태가 없는 것을 불신하는 자들은 약이라는 형태를 물질로 사는 편이 안심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와. 뭐야? 그 궤변.”

“궤변이 아닙니다! 신은 마음에 평안을 주고, 고통에서 구해주시니까요. 그렇다면 성욕 따위도 성령이 함께 하시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자 이즈미는 재밌다는 듯이 턱을 괴고 츠카사를 보았다.

“흐응, 그렇게 말하는 카사군은 성령이 임하셔서 성욕을 이겨 내본 적이 있어?”

“아, 아직, 경험은 없습니다만.”

“하지만 몽정 같은 건 했을 거 아냐?”

“무……!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

“카사군이 특별한 게 아니라, 그 나이 때에는 다 하게 되어있을 뿐이야.”

“그, 그런 것인가요? 왜 그런 걸 교회에서는 미리 가르쳐주지 않는……흠흠. 어쨌거나 그런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닌 한은, 예.”

이즈미는 잠시 궁리하듯이 턱을 모로 꼬고 츠카사를 보았다.

“그럼 카사군은 만약 그런 일이 생겨도 기도와 명상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이제야 이해해주시는 거군요, 세나 선생님. 성욕 같은 불확실하고 비이성적인 성질은, 치료될 수 있죠?”

“……응, 뭐, 치료라고 하면, 치료인 방법을 알고 있긴 하지?”

그렇게 말하며 이즈미는 창밖을 보았다.

“What? 정말인가요, 세나 선생님? 그럼 이 츠카사에게…….”

“음∼……안 돼, 안 돼. 카사군은 아직 안 돼.”

“어째서인가요?”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지, 말이 많아?”

“우웃. 세나 선생님은 Devil입니다.”

이즈미가 알기로, 츠카사가 알고 있는 말 중에 제일 심한 말은 그것이었다.

 


그러나 사태는 츠카사도 이즈미도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치달았다.

그것은 일상적인 풍경에서 시작되었다. 교회에 식료품을 전달하러 온 상점가의 심부름꾼 소년과 함께 짐을 창고에 옮기고 있을 때였다. 소년의 몸에 갑자기 히트가 발현했고, 츠카사도 그 페로몬의 유혹을 받아 발정했다. 다행히 함께 있던 수도사가 금세 발견해 소년에게 억제제를 마시게 하고, 여럿이 달려들어 츠카사를 독방으로 옮겼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자주 있는 해프닝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요즘 이 일대에는 얼토당토않은 믿음이 널리 퍼져있었다.

알파에게는 오메가의 호르몬을, 오메가에게는 알파의 호르몬을 주입하면 그 성질이 중화되어 베타가 될 거라는 것이었다.

어느 수도사가 그 믿음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의식이 몽롱한 츠카사를 찾아 왔다.

이걸로 괜찮아 질 테니까, 라면서.

 


결과적으로 츠카사는 베타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오메가의 히트와 같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명상을 하며 기도하고 있던 츠카사는, 갈수록 발정정도가 더욱 심해져서 이윽고 울면서 끙끙 앓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반나절.

창문에서 비치는 빛에 주황빛이 감돌기 시작했을 때였다. 독방의 문이 벌컥 열리며,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신부님이 기도를 해주러 드디어 온 것이라고 츠카사는 생각했다.

“그래서, 저렇게 되었다고요?”

목소리는 뜻밖에 젊게 들렸다.

아니,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츠카사는 알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 예에,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은 예의 수도사였다.

“한동안은 이 방 근처에 사람 못 오게 해줘요.”

그리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문이 닫혔다.

“하아. 질렸다. 이성의 신봉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미신은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뚜벅, 뚜벅.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이쯤 되면 이성도 미신의 일부라고 생각하거든?”

발소리는 츠카사의 바로 눈앞에서 멎었다. 힘들게 눈을 뜨니, 백의가 보였다. 항상 이즈미가 입고 다니는, 깨끗한 흰 가운이었다.

“그렇지 않아? 카사군.”

이즈미는 츠카사의 머리를 헤집었다. 두피에 서늘한 손가락이 닿는 감촉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지, 츠카사는 아, 아아, 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 표정은 이미 황홀경 속에 있었다.

이즈미에게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실제로 그게 좋은 향기인지 어떤지 지금으로서는 판별하기가 어렵지만, 왠지 모르게 그렇게 생각되었다. 선생님, 베타가 아니시군요, 알파인 거군요, 하고 츠카사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일목요연하게 깨달았다.

“세나 선생님…….”

“응? 완전히 맛이 간 줄 알았는데, 아직 정신이 남아있나보네? 카사군.”

“괴로……도와주세…….”

“도와달라고 해도 말이지?”

“아시잖아요……. 네? 아시잖아요.”

지금 츠카사의 상태를 듣고 이즈미가 왔다는 것은, 알파인 이즈미가 왔다는 것은, 즉 그런 의미가 아닌가. 츠카사는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한 머리로 그렇게 생각했다.

“흐응."

그러나 이즈미는 시원찮은 반응이었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츠카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 그런 거 싫어하거든. 땀나고, 기분 나빠.”

그 말에 츠카사는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사실 눈물은 계속 흐르고 있었으므로 딱히 이즈미의 말 탓이 아닐 지도 모르지만, 그 말에 심한 배신을 당한 듯한 기분을 든 것은 사실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은 이렇게 다정한데, 세나 선생님, 왜? 제가 고통스러워하는 게 보이지 않는 건가요? 의사란 그런 사람을 내버려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직종인가요? 츠카사가 말로 하지 못하는 원망으로 우으, 우으, 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줄줄 쏟자, 이즈미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카사군의 이거, 전형적인 오메가의 발정이네. 오메가처럼 페로몬을 스스로 발산하지는 않지만.”

어디에 그 특징이 나타나는 건지 츠카사로서는 알 길이 없었으나, 이즈미는 츠카사의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그렇게 진단했다.

“그야, 찾아보면 카사군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겠다는 알파 하나쯤 이 근방에 있지 않겠어? 하지만 고귀한 가문의 외동아들인 카사군이 자제심 없이 발정해서 오메가를 덮치려고 하질 않나, 끝내 정욕에 져서 울면서 교미해 해달라고 빌었다는 소문이 나면 가문의 이름에 먹칠도 이런 먹칠이 없겠지?”

츠카사는 거의 오열하면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가문이나 명예같은 건 지금까지 생각도 못했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이즈미가 상기시켜 준 순간부터 이 모든 불명예스러운 상황이 수치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반응이 이즈미를 만족스럽게 했는지, 그는 후후후, 하고 웃었다. 츠카사는 그만 말하라는 뜻으로 이즈미를 밀어내려 손을 휘둘렀지만, 어이없이 이즈미에게 붙잡혔다.

“뭐야? 이 손은. 카사군, 내가 어떻게든 해주길 바라는 거 아니었어?”

“싫다고 하셨잖……더럽다고 하셨으면……”

싫다고 하셨잖아요. 츠카사를 더럽다고 하셨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말씀이신가요. 츠카사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반도 다 말하지 못했지만, 이즈미도 알아들었다.

“카사군이 바라는 건 두 개야. 내가 카사군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거,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걸 아무도 모르는 거. 그렇지?”

츠카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즈미의 푸른 눈이, 순간 빛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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