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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황) 왜 오무라이스인가하는 문제

by leftoverpeach 2018. 4. 7.

키세네 누나들에 대한 날조있습니다

2018 적황데이 오메데또!

 




 


 



 키세 사토미는 신중한 성격이다.

 아래로 마이페이스인 여동생과 사춘기가 한창인 남동생을 둔 그녀는 철 든 이후부터 동생들과 큰 분란 없이 지내왔다. 동생들의 인생은 동생들의 것,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것. 그렇게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너무 간섭하지 않지만, 아니다 싶을 땐 아니라고 하는 정도의 적절한 거리감. 가끔은 거리감을 잘못 재어서 실패할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세 남매는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서로에 대해서는 웬만큼 알고 있다.

 한 번은 남동생이 막 중학교에 들어갔을 즈음, 여자애들한테 너무 시달린다느니 하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해대는 남동생을 골려주려고, 더 정확히는 네가 그 정도로 잘 생긴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고, 모델 사무소에 사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리고 잊어버렸을 즘 진짜로 연락이 왔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전화를 건 담당자에게 저도 모르게 실화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더 놀라운 건 제 의사로 시작한 것도 아니면서 남동생이 상당히 진지하게 모델로써의 일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도 제법 들어오고 있고, 인기도 있는 모양이었다. 누나의 시선으로 보면 그 정도도 아니지만 남들 눈에는 잘생겨 보이는 얼굴이라는 점을 그쯤에서 인정했다. 게다가 철부지였던 동생은 자기가 스스로 돈을 벌며 어른들과 일을 하게 된 탓인지, 아니면 그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농구부에서 이런 저런 일이 있었던 탓인지, 부쩍 철이 들기 시작했다. 그걸 대견하다고도, 가련하다고도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남동생은 어른의 세계를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 사토미가 떠올리는 것은 그런 생각이었다.

 사토미의 손에 들린 것은 신묘한 무늬의 여성용 속옷이다. 남동생의 옷장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사토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옷장을 뒤진 끝에 발견한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은 대개 우연히, 악의 없이 발견되는 법이다. 이번 주 빨래당번이었던 그녀는 남동생의 옷장서랍에 양말을 넣어두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양말을 넣어둘 공간이 없었다. 아하, 이 자식 남에게 보일 수 없는 책이라도 옷장에 숨겨놨나 하고 깊은 곳으로 손을 넣었다. 딱히 끄집어내서 남동생을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위치를 조금 옮겨서 양말을 수납할 공간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밖에 손에 잡힌 것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비닐 포장지의 소리였다. 그녀는 손에 잡힌 그것을 꺼냈다. 뜯어진 투명 비닐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것은 여성용 속옷이었다. 상하세트였다. 오무라이스 무늬였다.

 사토미는 한 동안 이런저런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 간신히 한 마디를 뱉었다.

 “왜 오무라이스인데……."

 동생은 언제부터 이런 여러모로 특수한 취향을 가지게 된 걸까?

 사토미로썬 알 수 없었다. 그보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오무라이스지? 유아적인 건가 혹은 오히려 한 바퀴 돌아서 사토미가 범접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의 영역인 건가.

 포장이 되어있다는 건 남동생이 쓰는 게 아니라, 남동생이 누군가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 포장이 뜯어져있다는 건 역시 선물이 아니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보다 남동생이 선물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토미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남동생은 어느 새 자신의 인식과는 동떨어진 아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지금껏 계속 사각파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삼각파였던 걸까? 그것도 누나들은 모르는데 이런 걸 선물해줄 특정 상대가 있었던 걸까?

그 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언니, 내 USB 봤어?"

 "헉."

 여동생이었다. 이런. 문을 열어둔 채로 정신이 팔려있었다. 사토미는 순간적으로 손에 든 속옷을 숨기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이런 순발력은 없는 편이었다.

 "…………."

 여동생은 그녀의 손에 들린 속옷을 신묘한 표정으로 보았다.

 "그거……언니거야?"

 "그……."

 '그래'라고 대답해야하는가, '그럴 리가 있니 이런 촌스러운 걸 내가 왜 입겠어'라고 대답해야하는가? 진실을 추구하자면 당연히 후자겠지만 인생은 그것만으로는 어떻게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사토미가 고민에 빠진 것을 보고 여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료쨩 바빠? 아니 별 건 아니고 우리 집에서 오무라이스무늬 속옷이 나왔는데 네 거야?"

 전화기 저편에서 엑, 악, 아악, 아니! 아니, 잠깐만, 내가 설명할 수 있어, 하는 남동생의 다급한 목소리를 사토미는 먼 곳을 바라보며 듣고 있었다.


 ***


 잠시 시간이 흐른 후, 키세 집안 막내아들은 시킨 것도 아닌데 두 누나 앞에 스스로 무릎 꿇고 앉았다.

 "여자 친구 거니?"

 "아님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남동생은 간결하게 대꾸했다.

 여친 거라고 했으면 오히려 좋을 뻔했다. 사토미는 잔잔하게 현기증을 느꼈다.

 "그럼……료타……우린 다 이해할 수 있으니까……."

 "아니라고! 아니라고요! 내 취향이 아니라고!"

 그것도 또 기묘한 얘기다. 남동생은 자기가 입을 열 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부정하기에 급급했다.

 "그럼 누구야."

 "…………."

 "여자 친구가 아니면 누구야."

 "…………."

 입을 다물어버리는 남동생에, 사토미는 질문을 바꾸어 물었다.

 "……누구 주려고 포장한 거니 아니면 선물인 척 하려고 포장해달라고 한 거니?"

 "그거 어느 쪽이든 좀 이상하지 않슴까!"

 "그러니까 사실을 말해!"

 남동생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여자 친구도 아니면 누구야. 괴롭힘당하니?"

 "누가 날 괴롭히겠슴까."

 "그럼 남자 친구야?"

 "그…………."

 그, 에서 말이 막혔다. 

 "...남자 친구니?"

 "……아……아니."

 "료타……남자 친구 있니?"

 "…………."

 좌우명이 자신에게 솔직하게인 남동생은 거짓말은 하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눈을 맞추려는 사토미의 시선을 마찬가지로 필사적으로 피했다.

 "미쳤어?"

 "……."

 "남친이 있어?"

 "언니 진정해."

 지금껏 공기처럼 곁에 앉아있던 여동생이 사토미의 팔을 붙잡으며 제지했다.

 "나도 없는 남친이 있다고?"

 "언니 진정해……."

 여동생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제지했다. 스스로도 남자친구 얘기에 조금 민감해졌다고 생각해, 사토미는 일단 진정하고 물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그래……잘생겼니?"

 "……잘 생겼슴다."

 지금껏 입 다물고 있다가 잘 생겼냐는 말에는 그렇다고 대답하다니 이렇게 괘씸할 수가. 심지어 저 남동생이 잘 생겼다고 하는 거면 진짜로 잘 생긴 것이다.

 "넘겨."

 "미쳤어?"

 "료쨩도 진정해……."

 평소 마이페이스인 여동생은 다소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그보다 료쨩, 누가 고백했니? 동갑이야? 선배야? 어디까지 갔어?"

 "저기 친누나한테 흥미본위로 그런 질문 당하는 내 입장도 생각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럼 남친 친구는 잘 생겼어?"

 "에……어떠려나. 그 사람 친구 없슴다."

 "료타……."

 "료쨩……."

 엣, 왜 동정하는 검까, 하고 남동생은 화를 냈지만, 그 순간 누나들의 머릿속에는 잘 생기고 친구 없고 이상한 성벽을 가진 남자가 떠오른 것이었다.

 "안 되겠다. 료타. 부모님한텐 말씀 안 드릴테니, 일단 한 번 만나야겠어."

 

***


 그리고 그 남자와의 만남은 그 주 주말 곧장 이루어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카시 세이쥬로입니다."

 "……."

 "……."

 남친이 이렇게 잘 생겼다고는 안 했잖아, 하는 누나들의 시선과 내가 잘 생겼다고 했잖아, 하는 남동생의 시선이 교차했다.

 "료타군과는 장래를 염두에 두고 진지한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자, 장래라닛, 아카싯치두 참……!"

 순식간에 얼굴에 화색이 돌며 뺨을 붉히는 남동생의 가증스런 자태를 본 체 만 체 하고 사토미는 물었다.

 "저기 아버님이 혹시……."

 "네 맞습니다."

 료타 무서운 아이……! 남동생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추가된 순간이었다.

 "저……그 속옷은 왜 준 거예요? 멀쩡하게 생겨서 그런 취향이에요?"

 "음……그런 취향이라기보다는……그렇군요."

 여동생이 직구를 날리자, 남동생의 남친은 겸연쩍게 웃더니 말했다.

 "료타가 부끄러워서하면서도 절 위해 입어준다는 사실에서 사랑을 느낀달까……."

 질문 자체가 대부분의 인류는 '히익 그게 아니고요', 하고 반사적으로 부정할 만한 질문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덤덤한 반응은 그야말로 남친의 그릇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해하시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거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군요."

 천천히 단어를 골라가며 읊듯이 말하는데, 그 우아한 자태가 잠시 판단력을 흐려지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어쩌지, 언니. 변탠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

 "예삿놈은 아닌 거 같애."

 정상이 아닌 건 확실했으나, 두 사람은 여전히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다. 남몰래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도 남동생의 남친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혹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자애를 품은 미소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껏 여자 친구만 백 명은 사귀었을 지도 모르는 남동생이 갑자기 남자친구가 생겨있는 사태에 두 누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남동생이 이상한 친구에게 걸려 희생된다면 그건 분명히 막아야할 사태지만, 마찬가지로 만약 이 남동생의 잘못된 일탈에 희생당하는 잘생긴 친구가 있다면 그를 구해내야 한다. 그런 의도로 만나자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어떤가. 남동생은 역시 잘생긴 남친의 성벽에 희생당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남친 쪽은 남동생의 일탈에 희생당할 만한 스케일로는 보이지 않았다. 사토미는 남동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를 틈타 물었다.

 "저어, 저 애가……왜 좋으세요?"

 남동생의 남친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글쎄요. 계기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왠지 귀엽지 않나요. 사토미는 귀를 의심했지만,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

 친남동생을 가지고 귀엽지 않냐고 되물어봐도 할 말 없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면서 부끄러운 듯이 웃는, 남동생의 남친이야말로 그 순간은 귀엽게 보였다. 조금 전까지 얼굴에 붙어있는 자애로운 미소가 영업용이었다면, 이건 무의식적으로 앗, 이건 진심이다, 하고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신장이 190cm에 가까운 남자를 왠지 귀엽다고 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럼 편히 있어요. 우린 이만 가볼테니까."

 남동생이 돌아온 타이밍에 더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 하는 눈치인 여동생을 끌고 퇴장해주었다. 남동생도 남친도 다른 학교라고 하니, 이렇게 만나는 시간은 귀중하겠지. 그 시간을 방해하긴 미안하다. 그리고 뭣보다 눈앞에서 동생이 남친과 알콩달콩하고 있는 걸 보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고행이었다. 풋풋하달까, 달달하달까, 구체적으로는 꿀에 절인 설탕에 물엿을 뿌려먹는 기분이었다.

 "고마워, 언니. 조금만 더 있다간 설탕 토할 뻔했어."

 여동생의 감상도 완전히 같았다. 

 "료쨩도 저렇게 되는 구나……저렇게 좋아하는 거 처음 봤어."

 "응, 그러게."

 그야, 이상한 속옷도 입어줄만 해, 하고 여동생은 덧붙였다. 그것과 그것이 같은 선상에서 다뤄질 문제인 지는 둘째치고, ‘저렇게 좋아하는 거 처음 봤다’는 것만은 사토미도 동의했다.

 애초에 남동생이 사귀는 사람을 제대로 소개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껏 남동생의 여자 친구들을 본 건 대체로 우연이었다. 예쁜 애네, 다음에 보면 인사시켜줘, 하고 말하면 남동생은 한 손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건성으로, 에에? 어떠려나, 또 볼 일이 있으려나, 하고 말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저러고 있으니……. 사토미는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든가, 사랑은 위대하다든가, 그런 흔해 빠진 경구를 떠올렸다.

 "아!"

 "응? 왜 그래?"

 불현 듯 목소리를 높이자, 여동생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사토미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니, 아무것도 아냐,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왜 오무라이스 무늬인지 물어보는 걸 잊어버렸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뤄도 괜찮겠지. 다른 상대들에게는 없었던 ‘다음’이 왠지 그에게는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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